제목 자연과 사람들이 일군 산성마을
등록일 2025.09.04 조회수 344

조선시대 남한산성 안에는 수천 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농사와 상업을 병행하고 시장을 이루었습니다. 성곽 수축 과정에서 주변 촌락을 성 안으로 옮기고, 성 안에 거주하는 주민에게는 부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기도 했습니다. 광무 3년(1899년)까지 약 4천여 명의 주민이 성내에서 생활하며 산성과 함께 살아갔습니다.

상세 설명

남한산성 노송 숲

조선 후기 1861년(철종 11) 무분별한 벌목으로 산사태가 빈발하여 성벽이 유실되자 산성마을 유지 석태경이 사재를 털어

소나무 15,600주를 성 안팎으로 널리 식재하였다. - 「광주부전유수재임시계록책(廣州府前留守在任時啓錄冊)」 1861년 3월 2일 기사

남한산성 노송지대 소나무 숲에는 산성리 주민들의 사랑이 있다. 

주민이 1927년 ‘금림조합’을 결성하고 교대로 노송지대를 지키면서 도벌꾼들은 쫓아내고 나무를 심고 가꾸었다.

‘금림조합비(禁林組合碑)’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금림조합장 석동균과 이영래의 덕을 기려 1934년 도감독(都監督) 이순영 외 37인이 세운 것이다.

 

 

남한산성에서 경성 사대문 안으로, 효종갱 - 밤새 끓인 해장국을 한양 대갓집으로 배달하던 음식

광주 성내 사람들은 배추 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을 되장에 풀어 온종일 고아서 항아리에 담아 솜에 싸서 

새벽녘 서울로 보냈는데 해장에 좋다 - 『해동죽지(海東竹枝)』(1921)

 

 

400년 전통의 순곡 증류주, 남한산성 소주 - 남한산성에서 전승된 민속주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라 불릴 정도로 숙종 때 번성했던 곳이다. 남한산성 일대는 서울에 근접해 부자가 많았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하던 이들이 만들어 마시면서 유래되어 조선 후기까지 널리 애용됐다고 한다.

쌀, 누룩, 조청 등을 섞어 만든 밑술을 사흘간 숙성시켜 덧술을 채운 다음 15일간 발효시켜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를 소줏고리에 넣고 불을 지피면 증발해 위로 올라가는데, 소줏고리 맨 위의 냉각수 그릇에 닿아 식으면 이슬처럼 소주가 받아진다.

증류과정을 거치 소주는 40도의 맑은 소주가 된다. 다른 약재나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아 맑고 깨끗한 것이 특징이다.(제조기능 경기도 무형문화유산 13호)

 

확인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