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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승영사찰과 승군의 역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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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2025.09.04 | 조회수 | 356 |
남한산성 축성에 참여하고 병자호란에서 활약한 벽암 각성 스님을 비롯해, 조선시대 승군들은 전쟁뿐 아니라 성곽의 보수와 방비를 맡았습니다. 승영사찰 10곳에는 승장과 승군이 수도 방어를 위해 상시 머물렀으며, 이는 남한산성의 사찰은 넘어 군사·종교가 결합한 독특한 체계를 지녔음을 보여줍니다.
“승려들이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이 적지 않으니 평상시에는 여러 곳의 궁벽한 산 속에서 울타리가 되어주고, 유사시에는 군대를 조직하여 방패가 되어준다.”
남한산성 축성 1624년 (인조 2)
남한산성 축성에 동원된 승군은 벽암 각성을 총섭으로 삼아 통솔하였다.
이후 완공된 남한산성에는 개원사, 국청사, 한흥사와 같은 사찰을 지어 군기와 식량을 보관하고 승군을 주둔시켜 남한산성을 방지하게 하였다.
병자호란 발발 1636년 (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는 고립되었다.
이 시기 남한산성에 주둔하던 승군을 척후병이나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이때부터 남한산성의 승군은 의승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의승입번제 신설 1640년 전후
전쟁 이후 남한산성을 중수하고 그곳을 관리하는 수어청의 위상을 높였으며, 산성의 방비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제도를 신설하였다.
남한산성 의승은 평안도와 함경도를 제외한 경기도, 황해도,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6도 승려를 대상으로 400명의 승군을 1년에 두 달씩 돌아가며 입번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