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처 : 남한산성 개원사
∘편찬자 : 김종수(金鍾秀, 1728-1799)
『병학지남(兵學指南)』은 '병법의 지침서'라는 뜻을 가진 우리나라의 병서이다. 16세기 중엽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紀效新書)』에서 군대의 훈련 방법을 중점적으로 간추려 엮은 책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선조의 명으로 류성룡이 편찬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명시적인 근거는 없다. 숙종 10년(1684)에 공홍도 병마절도사인 최숙이 일부 언해를 붙이고, 도판을 보완하였다. 여러 이본이 나오자 통일성 있는 체재로 만들기 위해 정조가 선전관 이유경에게 교감 대조 작업을 지시하고, 정조가 쓴 서문을 덧붙여 정조 11년(1787) 장용영(壯勇營)에서 간행하게 하고, 정본으로 삼았다.
남한장판 어제 병학지남은 1787년(정조 11년)에 정조의 명으로 남한수어사 김종수(金鍾秀, 1728-1799)가 편찬한 목판본이다. 총 5권 1책으로 구성되었으며, 한자를 먼저 쓴 뒤에 한글 언해본을 덧붙여 한문을 읽지 못하는 병사들까지 배려한 실용적인 편찬 의도를 보여준다.
『병학지남』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병서로, 동일 문헌의 판본이 많다. 『누판고(鏤板考)』에 따르면 장용영, 훈련도감, 남한산 개원사 등 13개소에 『병학지남』 책판이 있었는데, 그중 남한산성 개원사에서 간행된 『어제 병학지남』은 정본인 '장용영본'보다 앞서 편찬되었다. 서문 작성 시기를 보면, '장용영판'의 서문은 정조 즉위 11년 음력 11월[予卽阼十一年仲冬]에 작성되었으나, '남한장판'의 서문은 같은 해 음력 8월 하순[上之十一年丁未仲秋下澣]에 작성되어 더 빠르다. 이는 정조 시대 『병학지남』의 정본이 형성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장용영판 『어제 병학지남』의 범례에는 "구본에는 언해가 없으므로 남한본에서 가져왔다(舊無諺解故從南漢本添補)"고 명시되어 있어, 남한장판 『어제 병학지남』이 한글 언해본을 포함한 최초의 『어제 병학지남』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병서에는 군대의 훈련, 진을 치는 법, 행군하는 법, 호령에 따라 움직이는 법 등에 대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실려 있다. 권3 「영진총도(營陳總圖)」에서 52가지의 진법을 그림으로 그려 병사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 것이다.
장대(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 주변의 사전 배치[入敎場列成行伍圖], 대장이 대열을 갖춰 이동하는 모습[大將靑道圖], 대장이 장대로 이동 후 장대 주변의 군사 배치도[大將旗鼓臺上擺列圖], 그리고 대장의 명을 받들기 위해 초관, 파총 등 지휘부가 배치되는 모습[官旗廳掌號笛引出馬路圖]은 당시의 군사훈련 체계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조총 훈련도[鳥銃輪放圖]와 활 훈련도[弓鈀出前放射圖]는 실제 훈련 방식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남한장판 『어제 병학지남』 마지막 장 발문에서 김종수는 "남한수어사 신 김종수 명을 받들어 삼가 글을 덧붙입니다(南漢守禦使 臣 金鍾秀 奉敎謹跋)"라고 밝히고 있다.